[최미양의 삶을 읽다 2] 정서적 지지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3/01/02 [17:38]

[최미양의 삶을 읽다 2] 정서적 지지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3/01/02 [17:38]

 

정서적 지지

 

▲ 숭실대 최미양 교수     ©남정현 기자

 

소설 모순의 주인공 어머니는 주렁주렁 달려오는 불운을 헤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나간다. 압박해오는 불운 가운데 있는 그에게 산소 역할을 한 것은 친정 부모님, 여동생, 아들과 딸, 그리고 시장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가 자신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지지대였다.

 

정서적 지지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용어이다. 그러나 정서적 지지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많지 않을 것 같다. 최근에 읽은 책 튜브는 정서적 지지에 대한 가치를 잘 부각시켜주었다. 튜브가 지닌 상징부터 이를 말해준다.

 

튜브의 주인공 김성곤은 계속되는 사업의 실패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중년 남성으로서 과거에 자신의 피자 가게에서 일을 했던 지석이라는 청년과 재회하게 되고,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살고 있던 오피스텔에서 함께 살게 된다. 지독하게 소외되어 있던 김성곤에게는 한 공간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정서적 지지가 될 수 있는 한편, 김성곤과 지석은 서로의 삶에 관심을 보인다. 지석은 김성곤의 등을 곧게 펴기라는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김성곤은 지석의 뮤지션의 꿈을 응원한다. 세상의 아싸중의 아싸인 이들은 서로에게 튜브가 되어 좌절의 심연에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정서적 지지로 되살아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또 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영주이다. 그는 남편과 자신의 관계에는 다정함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계기로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서점을 연다. 서점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취준생에서 서점의 바리스타가 된 청년, 비정규직에 지쳐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서점에서 죽치며 뜨개질을 하는 아가씨, 남편과의 이혼을 고민 중인 원두가게 여사장, 아들의 학업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책방의 단골 동네 언니까지. 주인공은 그에게 그들과 삶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서서히 삶을 회복하고 마침내 서점에서 만난 남자 사람 친구와 해외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이도우 작가의 잠옷을 입으렴의 주인공 둘녕 역시 한 청년의 정서적 지지를 받고 삶을 되찾는다. 둘녕은 어려서 엄마가 가출을 하는 바람에 이모 집에서 동갑인 사촌과 자매처럼 자란다. 그런데 사촌이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갔다가 자살을 하게 된다. 자살을 하기 전 사촌은 둘녕에게 함께 수학여행 팀을 이탈하여 자신들의 외삼촌이 살고 있는 곳에 가자고 했을 때 이를 거절했었다. 사촌의 자살은 둘녕에게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가 되어 평생 그를 따라다닌다. 이러한 주인공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힘을 준 사람이 나타난다. 외삼촌의 처남이었다. 사촌이 자살할 때 어린 소년이었던 처남은 그 사건은 평생 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청년이 되어 둘녕이 사는 동네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되어 둘녕을 찾아온다.

 

그리고 둘녕에게 다정한 존재가 되어 준다. 둘녕이 몽유병이 있는 것을 안 청년은 어느 날 수호신이라면서 눈사람을 만들어 둘녕의 집 앞에 놓아주며 작은 팻말을 꽂아준다. 팻말에는 맨발은 안되요라고 씌어 있었다. 다정함에 목말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다정함이 얼마나 큰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더욱이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없이 그저 옷 수선을 맡기러 온 사람들만을 상대로 살아가는 둘녕에게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다정한 어린 청년은 통곡을 할 만큼 고마운 존재였다.

 

사람에게 사람의 애정은 생명력의 근원이다. 사막 같은 곳에 있으면 물 한 모금이 소중한 것처럼 정서적 지지에 목마른 사람은 아주 작은 지지에도 삶의 기운을 되찾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김성곤처럼 동거하는 사람이 생기고, 영주처럼 거의 매일 한 공간에서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자주 찾아와 둘녕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람을 만난 것은 메마른 땅 위에 내리는 단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좌절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두 누군가 찾아와주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실제로 아무도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막연한 행운에 기대면서 그냥 살아가야할까? 그 대답으로 나의 경우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좌절감을 오래된 옷처럼 편하게 입고 살아가고 있었을 때 나는 먼저 사람들을 도왔다. 다행히 내게 적극성이 남아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나서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내게 도움으로 갚았고 어떤 사람들은 친절함으로 갚았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작은 친절과 작은 배려를 받아먹으면서 조금씩 삶을 생명력 있게 키워나갔다. 그러니 이 글은 결국 익숙한 경구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다. 먼저 다가가 사람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해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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