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교수의 영미단편소설 읽기4] 인간성의 어두운 심연, 그래도 희망은 있다.–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인간성의 어두운 심연, 그래도 희망은 있다. –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인간의 본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선일까 악일까. 무정형으로 뒤섞인 두 가지 속성을 누가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이래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쟁이 있었고, 19세기 중반 미국문학 르네상스를 꽃피운 지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머슨(Emerson)과 소로(Thoreau)로 대표되는 초월주의자들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믿으면서 인간성에 낙관적 태도를 보인 반면, 『주홍글씨』의 호손(Hawthorne)과 『모비딕』의 멜빌(Melville), 공포와 추리소설로 유명한 포(Edgar Allan Poe)는 인간성에 깃든 악과 어두운 심연에 더 주목했다.
포가 남긴 수많은 단편소설 중에서 수작으로 꼽히는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는 인간 본성에 깃든 광기와 폭력과 도착적 성질을 초자연적인 공포 분위기에서 극적으로 그려낸다. 도끼로 아내를 살해한 흉악범죄를 저질러 교수형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남성 화자는 죽기 전 자신이 그 지경까지 오게 된 경위를 독백하듯 글로 써 내려간다.
하지만 그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범죄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듯 보이지만 곳곳에서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고 자기변명으로 보이는 진술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이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의 최후진술을 프로파일러처럼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독자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여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불합리하고 나약한 인간성의 한 단면을 목도하게 된다.
술에 취해 자신이 사랑하던 고양이 플루토(Pluto)의 눈을 산 채로 도려내고 그것도 모자라 목에 올가미를 씌워 나무에 매달아 죽인 남자의 악마적 행동은 요즈음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동물학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플루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기에 나무에 매달면서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지만 악어의 눈물일 뿐 분명 동물을 학대하는 데서 모종의 쾌감을 맛보았으리라. 그의 폭력은 예상대로 19세기 가정에서 애완동물과 마찬가지로 약자 위치에 있던 순종적이고 온화한 아내에게로도 뻗친다.
폭력은 학습되고 강화되고 쾌감을 제공하면서 그것을 휘두르는 인간을 점점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아니 즐기는 사이코패스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동물을 괴롭히고 학대하면서 아내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던 남자가 결국 아내를 끔찍하게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동물학대로부터 학습된 폭력의 필연적 결과이리라.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 상당수가 동물 학대의 전력이 있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는 ‘검은 고양이’ 화자의 행동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온순하고 부드러운 심성을 지녔던 주인공 남성에게서 폭력적 성향을 이끌어낸 것일까. 물론 그는 모든 것이 술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과음으로 인해 자신의 성정이 변하고 점점 난폭해지면서 집에서 기르던 동물들을 거칠게 대하고 아내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휘둘렀다고 고백한다. 과연 술이 전부였을까. 술을 마신다고 누구나 폭력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술을 계기로 그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악한 성질이 발현된 근본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남자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인간 내면에 깃든 비이성적인 ‘도착 심리’를 언급한다. 살아있는 고양이의 눈을 도려낸 후 자신을 피하는 고양이의 모습에 화가 나서 나무에 매달아 죽인 것은 “단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악하고 어리석은 행위를 저지르고,” “뛰어난 분별력이 있어도 법이기 때문에 위반하고 싶은” 도착적 충동으로 인한 것이었고, 그러한 기이한 심리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성 속에 그가 언급한 광기와 불합리성과 도착적 성질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인 흉악 범죄가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세계 곳곳에서 그렇게 자주 일어날 리가 없다. 사실, 인간성에 깃든 그러한 불합리하고 도착적인 성질을 탐색하는 것이 포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성의 심연에 악의 씨앗이 잠재되어 있다 할지라도 술을 마시는 누구나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듯이 누구나 흉악범이 되지는 않는다. 술을 계기로 그의 폭력성과 악마성을 발현하게 만든 어떤 성격적, 환경적 요인이 분명 있을 것이다.
프로파일러처럼 면밀하게 그의 심리를 관찰하며 그가 하는 말을 뜯어보니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한 문장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온순하고 동정심 많은 아이로 알려졌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마음이 너무도 여려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고 언급한다. 부드럽고 여린 성정으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던 이 남성은 동물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자기처럼 동물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나 일찍 결혼했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당대의 이상적인 남성성에 부합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19세기 가부장제에서 온전히 남성성을 발휘하지 못했던 ‘유약한’ 남성이 “술을 계기로 변덕과 짜증이 늘어나면서” 약자인 동물과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겠다. 요컨대, 요즘 뉴스에도 흔히 등장하는 가정폭력의 익숙한 공식이 재현된 것이다.
그런데 ‘검은 고양이’를 이렇게 남성의 비뚤어진 폭력과 도착적 성질에만 초점을 맞추어 읽으면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를 놓치기 쉽다. 포는 불합리한 광기나 도착 심리에 지배되는 특이한 인물들을 통해 인간성의 어두운 측면을 탐색하면서도 그러한 행위를 감시하고 비난하는 인간 내면의 심판자가 발현되는 양상을 공포 효과를 통해 탁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고양이 플루토를 목매달아 죽인 뒤 남성 내부에 찜찜하게 남아있던 죄의식은 술집에서 만난 두 번째 검은 고양이가 플루토의 유령인 듯 비슷한 모습을 드러내자 점점 공포로 치닫는다. 두 번째 검은 고양이의 한 쪽 눈이 없다든가, 배의 하얀 반점이 교수형의 형상을 띠고 있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이지만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행위를 심판하는 남성의 죄의식에 투사된 공포 어린 환영일 수도 있다.
고양이로 인해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뒤 벽 속에 감쪽같이 시신을 감추는 완전범죄가 가능했음에도 애써 수사관의 주목을 끄는 행동을 하게 만든 이상한 내면의 충동이 이를 잘 말해준다. 남성은 교활하고 사악한 고양이가 자신을 벌하기 위해 아내를 살해하게 만들고 결국 교수형에 이르게 했다고 언급하지만 실은 그의 내면의 죄의식과 양심이 자신의 행위를 심판하고 벌했던 것이리라.
포는 이렇게 여러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에 깃든 광기와 도착적 성질을 다루면서도 이것들과 공존하는 양심과 죄의식의 작용을 공포 분위기 속에 극적으로 구현한다. 프로이드의 심리학이 발표되기 훨씬 전에 인간 무의식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시도한 포는 인간성의 어두운 측면에도 불구하고 죄의식과 양심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차마 입을 다물 수 없는 끔찍한 범죄 소식에 인간성에 대해 환멸이 느껴질 때 포의 ‘검은 고양이’나 ‘고자질쟁이 심장’(The Tell-Tale Heart)을 읽어보시라. 인간은 결국 완전한 악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옥 교수 (원광대 영어교육과) <저작권자 ⓒ 참교육신문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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