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오래된 미래4] 단역배우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9/08 [16:54]

[윤관범의 오래된 미래4] 단역배우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9/08 [16:54]

 

단역배우

 

 

▲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동안 매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는 체벌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시대였고 고등학생이면 옳고 그름을 충분히 판별할 수 있으니 잘못이 있으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를 들었다. (칼럼 내용 중)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동안 매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당시는 체벌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시대였고 고등학생이면 옳고 그름을 충분히 판별할 수 있으니 잘못이 있으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를 들었다. 아파하면서도 다시 손이나 엉덩이를 갖다 대며 아이들도 나의 폭력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학교를 찾은 부모들도 때려서라도 가르쳐달라는 말을 거의 빼먹지 않았다. 폭력교사를 문제 삼은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그들이 붙인 대자보에 내 이름은 없었다.

 

매질의 기준을 정해 놓고 난 거의 매일 매를 들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내가 맡은 학급이나 교과목의 성적도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일이 많았기에 나의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랬던 나에게 맞지 않겠다고 대든 학생이 있었다. 그것도 아이들이 다 보는 교실에서. 그 상황에서 어찌 정신을 수습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이 내 머리와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그 아이를 데리고 교무실로 갔다. 일단 난처한 상황을 피해 보자는 심산이었고 잠시라도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유를 물었고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자기는 대학을 가지 않을 것이니 공부할 필요가 없고 그러니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하여 맞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180이 넘는 균형 잡힌 몸매와 조각 같은 얼굴의 소유자인 그는 이미 여러 번 대학로의 무대에 선 경험이 있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졸업하면 바로 극단에 들어가 생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며 대학 진학은 시간 낭비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생각이었다. 아는 만큼 표현하는 것이니 대학에서의 배움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설득해 보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 난 이미 그의 선생이 아님을 읽을 수 있었다. 그에게 약속했다. 때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후회할 거라고. 참 못난 선생이었다.

 

그는 졸업했고 나는 그를 까맣게 잊었다. 몇 년이 흐르고 반창회 소식을 알리러 찾아온 아이에게서 그의 소식을 다시 들었다. 학교 근처에 술집을 차렸다는 말에 옛일이 떠오르며 갑자기 그가 보고 싶어졌다.

 

하여 그 아이 술집에서 반창회를 하였고 아직도 배우의 꿈을 버리지 않은 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후 아이들과 몇 번 그 집을 찾았고 많은 대화 중 대학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땐 저기요”, “있잖아요.”로 말을 시작하며 날 한 번도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던 그가 스스럼없이 선생님으로 불러주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다. 번번이 진학에 실패했다는 소식만 들리던 어느 날 그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예전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전하던 그도 축하의 말을 전하던 나도 감정을 억누르느라 어색했다.

      

그렇게 20대 후반에 대학에 가서 30이 되어 졸업한 그는 국립극단을 시작으로 여러 극단을 전전하며 많은 무대에 섰다. 무대에 선 그를 바라볼 때면 난 항상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그는 연극계에서 중견 배우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그의 공연을 보고 작품에 대한 의견도 나누며 나도 연극에 빠져들었다. 나중에 연극반을 지도하게 된 계기였던 셈이다. 연극반 아이들을 지도하며 그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거의 매일 만나 인물 분석과 대본 속 숨은그림찾기 등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정말 소중한 7년이었다.

 

그러던 그가 영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슬프지만 돈 때문이었다. 단역으로 몇 장면만 촬영해도 한 달 연극공연 출연료와 비슷한 돈을 쥘 수 있으니 연극에서 영화로의 시선 이동은 배우들에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는 단역으로 영화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 편, 또 한 편 출연하는 영화 수는 늘어났으나 그는 단역배우를 벗어나지 못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등 먹고 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도 하지만 그는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그의 나이 50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그는 여전히 단역배우다. 그러나 아직도 주연의 꿈을 잃지 않았다. 그의 차엔 항상 골프백이 실려 있다. 단역 주제에 골프나 치고 다닌다며 비웃는 친구들조차 있다 한다. 영화감독이나 PD들이 골프 치러 필드에 나갈 때 인원이 맞지 않으면 연락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다. 언제 올지 모를 그 연락에 대비하여 항상 준비하고 있는 것이니 골프는 그에게 비즈니스인 셈이다. 그렇게 얼굴도장을 찍고 그는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다. 단역으로.

 

▲ 지인들이 오면 찾는 곳. 갈치저수지를 바라보며 또 주변을 거닐며 뉘엿뉘엿 해가 질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진학한 아들 이야기, 힘들어지는 살림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단역배우가 느껴야 하는 굴욕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올해 그는 내가 사는 곳에 두 번 왔다. 지인들이 오면 찾는 곳. 갈치저수지를 바라보며 또 주변을 거닐며 뉘엿뉘엿 해가 질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진학한 아들 이야기, 힘들어지는 살림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단역배우가 느껴야 하는 굴욕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이 어린 PD들의 하대, 부조리한 관행.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던 이야기였다. 처음엔 자존감이 강한 그이기에 느껴야 하는 굴욕이라 생각했으나 들을수록 모욕이 분명했다.

 

굴욕은 느끼는 것이지만 모욕은 당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의 푸념을 들으며 많은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건 어쭙잖은 언설이 아니라 공감의 표정과 눈빛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내 속에 가라앉힌 언어들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연기자다. 우리는 삶이라는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면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받는다. 누구는 주연이고 조연이고 그리고 단역이지만 관객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 삶과 무대의 차이다. 무대나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항상 한 방향이지만 삶 속의 관객은 그 수만큼이나 보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동일한 시공간에서조차 그 누구도 모두에게 주연이 될 수 없고 누구에게나 단역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어떤 배역이 되었든 삶에선 누구나 주연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다른 이에겐 단역으로 비칠지라도. 자 그러니 모욕을 당한 역할을 주인공은 어찌해야 하지?

 

그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면 모두가 주인공을 볼 때 나는 그를 본다. 그리고 모든 배우들의 얼굴에서 그를 본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는 배우의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을 존중한다. 그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편안한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치열한 단역배우일지라도. ! 그런데 이 역시 나에게 되돌려야 할 말이 아닐까?

 

▲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는 배우의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삶을 존중한다. 그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편안한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치열한 단역배우일지라도. (칼럼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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